세번째 맞선 뒤풀이 3#
정후는 곧장 집에 들어가기가 부담스러워 준혁과 더 놀다가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보았다. 어휴~. 들어가자마자 또 닦달해 대시겠지. 저녁밥은 먹이고 볶아도
볶으셔야 할 텐데....뭐라고 대답해야 할까나.....
아니나 다를까 정후가 집에 발을 들여 놓기가 무섭게 정후는 쇼파에 불려가 앉았다.
뒷이야기가 궁금했던지 상희도 와있었다. 어머니는 어제의 성과를 모두 상희의 은공으로
여기며 거의 종교교주를 받들 듯 야단을 떨었다.
하긴 어제 나의 둔갑술은 거의 신의 경지였다고 볼 수 있지.
준혁이의 말처럼 어제의 나는 내가 아니었던 게야.
생각해 봤어 한 번 더 만날 거지
어머니의 재촉에 정후는 위의 천장만 올려보며 딴청을 부렸다. 할 말이 없어서였다.
어머니의 부릅뜬 눈총이 날아와 정후를 괴롭히자 상희가 옆에서 말했다.
정후야. 어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말해봐. 내가 들어 보고 의논하자.
언니는 형부 저녁 안 해줘 이 시간에 여긴 왜 와 있는 거야
너네 형부 오늘 야근이거든. 말 돌리지 말고 어서 실토해봐.
정후가 어제 있었던 일을 소상히 말하자 상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들었다.
정진과 어머니, 올케승아도 열심히, 재미삼아 들었다.
정후의 말을 다 듣고 난 상희가 말했다.
네가 말하는 것을 듣고 보니 너도 박태호보다는 정민태가 더 마음에 드나보구나.
정후는 사실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상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민태라....정민태....정민태.....의사라고 했지
앗!! 이모 혹시 정민태란 사람 **대학병원에 있지 않아요
상희의 말에 정후와 어머니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후는 상희의 입에서 말이 나옴과 동시에 살짝 사랑을 느꼈다.
혹시... 두 사람 예전에 서로 맞선을 본 적 있는 사이가 아닐까
오옷! 그렇다면....맞선무림계의 고수 대 고수의 불꽃 튀는 대결이 있었단 말이렷다!!
이는 곧 A매치급 경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빅리그는 TV생중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케이블 위성방송으로라도 중계를 해야 하는
것인데.....오호~통재라...그런 세기의 대결을 구경 못하다니....원통타!!
두 사람이 맞선을 본다면.....서로 간에 날아다니는 맞선권법이 장난이 아닐 것이며,
방어술 또한 무시무시할 것일터.....아아...무진장 재미있었겠다.
언니!! 그 사람과 맞선 본 적 있지! 그때 나도 좀 불러 주지. 구경하게.
아니. 얘가 또 이상한 소리 하네. 그게 아니라... 이모! 우리 큰 고모 알죠
상희 너의 고모 물론 알지. 콧대가 장난 아닌....
네. 그 콧대 높은 우리 고모의 친구일당 중 한분이 그 정민태란 사람의 어머니거든요.
그 분 성격은 우리 고모 저리 가라고 할 정도니까.
정말 그런 사람을 시어머니로 두면 고달픈데....
어머니는 실망을 했는지 큰 한숨을 쉬었다. 상희가 이어서 말했다.
나도 한참 맞선 볼 때 그 쪽도 맞선을 보고 있었을 때라 말이 있긴 했는데, 우리 고모가
나 고생한다고 펄떡 뛰었었거든요. 서로 친구니까 잘 알고는...그래서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들은 이야긴데....정민태란 사람...대학 다닐 때부터 사귄 여자가 있었대요.
그런데 여자 조건이 시어머니 될 사람 마음에 안 들었었나 봐요. 그래서 몇 년을
방해해서 기어이는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런 후 정민태란 사람은
맞선만 계속 본다고....맞선만 지금 몇 년을 보고 있는데...맞선봐도 언제나 시큰둥해서
애프터신청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그러더라구요. 상대 여자들한테는 애프터가
계속 들어오는데 남자가 싫다고 한대요. 고모도 남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이러다가 나이만 먹어가는 건 아닌지 안타까워하던데... 그런데 정후에게
애프터신청을 했다면....정후가 정말 마음에 들었나 봐요.
내가 마음에 들었다기 보다는 지친거지.... 맞선에 지친거지....흑! 불쌍하다....
가엾게도 원하지 않아도 맞선고수가 되어버릴 만큼 맞선을 보아온 것이었구나.
같이 애프터신청을 했는데도 박태호는 거론하지 않으면서 정민태만 자꾸 강조를 한 이유가
바로 그것인가. 한 번도 애프터신청을 해본 적이 없는 골칫거리 남자였기에 중매쟁이가
얼씨구나 하면서 나에게 떠넘기려고 한 것이 분명해.
맞선 자리에 나오는 사람도 다들 나름대로는 사연이 있구나....나만 바보인 건가.....
어머니는 실망을 했는지 한숨만 연거푸 내 쉬었다.
딱 좋은데...딱 좋은데.... 시어머니 될 사람이 그러면....그래도 작은 아들이라
나가 살면 괜찮지 않을까
그건 아닐 거예요. 그 분은 큰아들 보다 작은 아들을 더 자랑스러워 한다고 그러더
라구요. 세상에서 자기 아들이 제일 잘난 줄 아는 사람이라고. 그런 만큼 작은 며느리
될 사람에 대한 기대가 커서 굉장히 고른다던데요.
상희와 어머니, 올케 승아는 정작 본인인 정후는 아무 말이 없는데 셋이서 열심히 토론을
벌였다. 정후는 100분 토론의 TV생중계를 시청하듯 담담히 구경만 했다.
오늘의 토론 주제는 고부간의 관계-이런 결혼해야 하나였다.
정후는 심심하던 차에 어머니 옆에 있던 파일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정후는 뭐지 하는 생각에 파일을 펼쳐보았다. 윽!! 이것은 맞. 선. 상. 대. 목. 록.!!
엄마. 이거 뭐야
어 네가 맞선 볼 사람 명단. 중매쟁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네 수준에 맞는
사람을 고른 거야. 우리는 그 중에서 고르면 돼.
마, 많기도 하다....설마 여기 있는 사람 다 보는 건 아닐 테지.....
내가 나이가 많아서 중매쟁이들한테 사정사정 했다면서 이렇게 상대가 많아
정후는 파일을 화르륵 넘겨보았다. 역시나 남자 윤정후는 없었다.
그 사람은 내 수준 보다 위란 말이군. 역시 상급레벨인가 소위 명품!!
중매결혼이란 비슷한 수준을 맞춰 끼리끼리 짝짓기를 하는 것이란 말인가...서글픈 현실!!
어머니가 정후에게 말했다.
정후야. 우선에 정민태는 보험 들어 놓고 다른 사람도 보자. 포기하기에는 아까우니까
적당히 걸쳐놓고 다른 사람도 보는 거야. 정민태보다 괜찮은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과
결혼 하는 거고, 정민태 보다 괜찮은 사람 없으면 그냥 정민태랑 결혼 하고. 어때
어때고 뭐고 간에 어차피 엄마 마음대로 하실 거잖수!
내가 지금 더 이상 맞선 안 본다고 하면 내 말을 들어주실 거유
어머니는 어머니 선에서 토론 판결은 한 후 정후를 방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했다.
정후는 씻고 저녁식사를 했다. 속이 갑갑해서 먹는 둥 마는 둥하고 힘들게 방구석의 품으로
돌아갔다. 정후가 책상에서 책을 펼치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네.
어제 잘 들어가셨습니까
엉 누구래 어제 혹시 맞선 본 상대 어제 두 사람 중 누구지 정. 민. 태!!
아, 예. 잘.... 드,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전화해서 놀라셨나 봅니다. 어제 적어주신 번호가 거짓 번호인지 확인해 볼 겸
전화 드린 건데... 실례한 겁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이걸 어떡하지 엄마한테 말해야 하나 그 보다.... 전화를 해도 되는 거야
일방적으로 전화할 순 없다고 상희언니가 그랬는데....할 수 있나 전화번호를 적어줬다는
것 자체가 전화해도 된다는 의미 아닌가 내 손으로 적어 줬으니...쩝! 할 말 없다.
방금 연락 받았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는....
방금 햐~ 우리 엄마 행동하나는 빠르군. 평소는 굼뜨더니만 이런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
하는 것을 보면....이 남자도 행동하나는 빠르구.
그나저나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지
정후씨. 거절의 의미는 아니죠
정후는 한동안 가만히 침묵하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네. 거절의 의미는 아닙니다. 사실 전.... 그 동안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이 나이가 먹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맞선도 더 나이 먹기 전에 결혼 시키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 때문에 마지못해 나갔던 거구요. 그래서 머릿속이 구체화 되어있지 않은
것 뿐 입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지, 어떤 사람과 결혼 하는 것이 좋은지....많은 생각들이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생태구요. 그래서 확실한 대답을 못 드리는 겁니다. 죄송합니다.
..........전 솔직히 많은 맞선을 봐왔습니다. 맞선을 통해 만난 사람에게서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 같은 건 애초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 하더군요.
기다리겠습니다. 정후씨의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어엉.... 이런 부담을 주다니...... 정말 고수구나..... 이제 난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
부담 느끼지 마시구요. 전 더 이상 맞선 안 보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이, 이, 이... 이런 말을 하면서 부담을 느끼지 말라니.... 댁 나이가 적기라도 하면
부담을 덜 느끼겠소만. 아니잖습니까!! 그냥 맞선은 계속 보시지....어흑!!
아! 좋은 소식 하나 말해드리겠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정후씨와 저의 궁합을 봤는데
굉장히 잘 나왔나 보더군요. 어머니도 흡족해 하십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오늘 밤엔 정후씨를 생각하면서 잠들겠습니다. 이건 정후씨가 허락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고, 저의 의지의 문제도 아닙니다. 정후씨 생각이 나는 건 제 의지 밖의 문제라서....
민태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우엉~ 어떡해!!!! 부담을 팍팍 주는 구나!!
잠깐!! 혹시 이 사람 정말 내가 마음에 들은 건가 혹시 자기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니까
그냥 적당히 묻어가려는 거 아니야 에휴... 적당히 묻어가려는 사람이 이렇게 직접 전화
하지는 않았겠지. 왠지 이 사람....결혼하면 아내한테 굉장히 잘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후는 갑갑한 심정을 다스리기 힘들어 희영이한테 전화를 했다.
우엉~~희영아.... 워떡혀. 워떻게 혀. 차라리 맞선 안 보고 엄마 등살에 시달리는 편이
더 나은 거 같어.
그러게. 결혼 하고 싶어 하는 노처녀들을 생각한다면 넌 죄짓는 거지.
불쌍한 노총각들....쯧쯧... 다들 괜히 헛물켜는 건 줄도 모르고.
희영아... 위로해 달랬더니 구박하고 있어.
그 정민태란 사람 괜찮네. 그 정도면 너한테 잘해줄 것 같고. 그 사람 어머니도 널
마음에 들어 한다면 문제될 게 없잖아.
웅......
알아, 알아!! 문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지!!...... 정후야!!
어.
........... 너 예전에 내가 왜 미팅 자리만 생기면 널 불러내려고 애썼는지 모르지
보름달처럼 자리를 훤히 밝힐 얼굴이 필요했다며 너희들의 미팅 성사를 위한 소원을
빌기 좋은 보름달 말야.
기지배. 달이 태양 근처로 이주 갔냐 너 같이 조막만한 달을 보면 퍽이나 소원 빌
기분이 나겠다....... 정후 넌 참 야비한 인간을 친구랍시고 옆에 끼고 있는 거야.
박복한 것 같으니....
네가 야비한 게 어제오늘 일이니 다 창원코코 내 인격이 훌륭한 거 아니겠냐.
미안. 좋은 친구가 못 되어줘서.... 아직까지 난 어째 이 모양이다....
정후는 슬픔이 묻어나는 희영이의 목소리에 갑자기 긴장했다.
희영아.... 너 무슨 일 있니 남편이랑 안 좋은 일 있어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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